여행

외롭지만 아름다운 외도

굿멘 2007. 7. 24. 09:22



  빡빡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일을 놓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여름은 정말이지 싱숭생숭한 계절이다. 뜨거운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따가운 햇살은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며, 땀은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그래야 이 무더위에 맞설 수 있다. 회색빛 빌딩숲에 갇힌 공간. 여름은 서울을 더 답답하게 짓누른다. 문득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람이 그리워졌다. 어디라도 좋다. 지금 있는 이곳에서 멀리, 아주 더 멀리 떠나고 싶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외도. 경남 거제에서 남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작은 섬이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이곳은 이제 사시사철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게다가 녹음 짙은 여름에는 그 화려함이 더해진다. 푸른 하늘 아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그 위로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펼쳐지니 어찌 쉬이 갈 수 있으랴. 서울을 출발해 통영, 그리고 그곳을 지나 거제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고 해가 사라지자 마음이 점점 조급해진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초행길이 아니던가. 밤길은 어둡기만 한데, 길은 구불구불하고 이정표는 당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맞는지 바짝 긴장한 채 어둠 속을 한참이나 달렸다. 드디어 나타난 이정표는 몽돌해수욕장을 가리키고 있다. 휴~ 우리가 찾던 그곳이 맞다.올망졸망한 모양의 자갈돌인 검은색 몽돌이 깔려 있는 몽돌해수욕장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어 버린 일행들.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몸도 마음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뒤척이지 않고 곤한 잠에 빠져든다.



  이른 아침, 날씨가 그리 좋지 않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온통 희뿌연 회색빛. 푸른 하늘과 바다를 기대하며 힘껏 달려온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런데, 그나마 이것이 좋아진 날씨란다. 듣자하니 지난주는 내내 비가 내려 배조차 뜨지 못했다고. 실망하고 돌아갔을 여행객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도 멀리서 찾아왔을 텐데…. 외도로 들어가는 배는 장승포, 와현, 구조라, 해금강, 학동, 도장포 등 선착장마다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 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외도의 인기를 실감나게 했다. 뱃길을 따라 ‘바다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해금강을 거쳐 외도에 다다랐다.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연상케 하는 외도 입구를 지나자 꼭꼭 숨어 있던 외도의 신비로움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유럽풍의 거대한 정원, 오르는 길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그곳은 지상낙원과도 같다. 대표적인 곳이 비너스 가든. 외도가 개발되기 전 학교 운동장으로 쓰이던 공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본떠 만들었는데, 12개의 비너스 조각상들과 정원이 조화를 이뤄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비너스가든 옆쪽으로 있는 화훼단지 또한 손꼽히는 명소로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다양한 꽃들이 산책로를 따라 꽃망울을 터뜨리며 여행객을 반긴다. 이외에도 외도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외도 전경과 함께 거제도, 해금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와 전통 놀이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전시된 놀이 조각공원, 풍성한 정원수로 가꾼 천국의 계단, 이국적인 선인장 동산, 작고 아담한 교회가 돋보이는 명상의 언덕 등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향기로운 추억이 된다.



..외도는 개인 소유 섬이다. ‘얼마나 돈이 많길래?’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보다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끼게 된다. 사람들을 맞이하는 입구에서부터 외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꼭대기까지 계획적으로 그리고 빈틈없이 만들어진 공간. 오롯이 노력으로 일궈낸 이곳은 모두 한 낚시꾼의 열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외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해상공원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낚시꾼이었던 이창호 씨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는 1969년 태풍을 만나 이곳으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외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결국 전 재산을 털어 이 섬을 사들였다. 이후 그는 부인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수목원을 조성했고, 결국 1995년 외도 해상농원으로 문을 열었다.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부인 최호숙 씨가 해상농원의 운영을 이어받아 그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원에 새겨진 그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돈 많은 어느 부유한 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틀리는 순간, 괜히 숙연해진다.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보기엔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쏟아 부은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섬보다도 값질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시간 30분에서 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 좀 더 느긋하게 외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건만 왜 이리 성급한 것인지. 꽉 짜인 일정이 여행객을 조바심 나게 만든다. 짧게 끝나버린 외도에서의 시간. 배를 타고 되돌아가면서도 고개는 내내 섬을 향해 있었다.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붓는 사람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꼭 배워야 할, 그리고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외환 웹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