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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避暑인가, 투서鬪暑인가?

굿멘 2007. 8. 10. 09:39
피서避暑인가, 투서鬪暑인가?

여름휴가의 절정에 이르는 8월 첫 주말을 맞고 있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휴가철을 맞으면 서울 도심이 한가했는데 오늘 바깥나들이를 해보니 그게 아니다. ‘아직 덜 떠난 걸까?’ 아니면 ‘워낙 차가 늘어 많아져서 사람들이 웬만큼 서울을 벗어나서는 차이를 별로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원인이 자못 궁금하다.

모두들 휴가를 떠났다면 서울이 한가해야 할 텐데 아직도 차가 많을까하고 번잡한 생각이나 하는 것은, 올 여름엔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피서를 하기 위해 떠날 처지도 못되기 때문이다. 나는 웹언어를 쉴 새 없이 배워야 하니 그렇고, 딸아이는 수험생처지여서 수능시험이 백일 남짓 밖에 남지 않았으니 언감생심 바캉스는 꿈도 꿀 수 없는 터이다.

한화휴제閑話休題하고 휴가와 피서가 지닌 뜻을 헤아려보는 것으로 더위에 맞서보련다.

휴가休暇란 무엇인가?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쉰다는 의미를 가졌다. ‘틈 가’ 또는 ‘겨를 가’는 ‘날 일日’에 부수를 뺀 ‘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는 요즘엔 홑으로 쓰지 않지만 언덕에 발판을 내어 손을 잡고 한 칸씩 오르는 모양으로 ‘함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말로써 ‘틈을 내어 하루 편안히 함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고 보면 휴가란 혼자 쉰다는 말이 아니다. 온가족이나 정다운 벗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제대로 휴가를 즐기는 것이 된다.

피서는 무슨 말인가.

避暑 ‘피할 피避’ 辶=辵 쉬엄쉬엄 가다와 辟 벽→피는 한쪽으로 기울다의 뜻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부딪치지 않게 피하여 쉬엄쉬엄 지나가다’는 뜻을 가졌다. ‘더울 서暑’는 ‘날 일日’과 ‘자者’ 합合하여 이루어진 글자로, 자者는 옛 음이 닮았던 ‘서庶’불타다와 뜻이 통하므로 햇볕에 쬐어 무더움을 뜻한다. 피서는 ‘선선한 곳으로 옮겨 더위를 피(避)하는 일’ 이 된다.

휴가를 얻어 피서를 한다는 것은, ‘더위를 피해서 가족들과 함께 일손을 놓고, 나무에 기대 쉴 곳을 찾아간다.’ 는 말이다.

그리고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피서에 맞서는 말이 있는데, 투서鬪暑가 그것이다. 피서가 더위를 피하는 것이라면 투서는 더위에 맞서 더위를 견뎌낸다는 말이다.

산이나 계곡을 찾아 조용히 삶을 관조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휴가가 피서라고 한다면, 바닷가 해수욕장을 찾아 바캉스를 즐기는 이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더위에 맞서 투서를 즐긴다는 표현이 썩 어울리는 말일게다. 그러나 실제로 투서를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산업현장에서 비지땀 흘리는 역군들과 국토방위에 불철주야 애쓰는 국군장병들, 119대원들, 경찰공무원, 그 외에 수많은 삶의 터전에서 가족과 국가를 위해 애쓰는 많은 이들이야 말로 투서를 하는 것일 것이다. 끝으로 공부를마치고 돌아오는 길, 전철역부터 집까지 6km가 넘는 밤길을 무더위 속을 걸으며, 체력을 지키려고 애쓰는 딸아이의 투서도 있다. 투서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