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비극의 땅 - 아프가니스탄
굿멘
2007. 8.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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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이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 세계의 오지나 다름 없는 곳에 위치한 칸다하르, 가즈니, 카라바그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인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이런 생소한 지명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한번쯤 궁금하다. 과연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곳이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무고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할까? 그 곳은 정말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곳일까? 궁금하기는 해도 한국인 21명이 억류된 그 곳에 대한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다.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이주형 저·사회평론 펴냄)은 몇 해 전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온 한 고고사학자의 리포트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에서 책을 구입했지만 내용이 참 알차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정치 상황은 물론 단순한 무슬림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무장조직인 무자헤딘과 탈레반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베일에 가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소개한다. |
스러져가는 문명의 대로 고고미술사학자 이주형 서울대 교수는 그의 저서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문명사의 라운더바우트'라고 표현했다. 토인비가 말한 '라운더바우트(Roundabout)'란 유럽의 방사상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사방에서 오는 길이 한 점에 모였다가 다시 퍼져나가는 원형의 로터리를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이들의 왕래와 이동이 잦았던 문명사의 배꼽같은 곳이다. 서쪽의 이란에서 들어와 동쪽의 인도를 향하는 길은 유라시아 동서 교통의 주요한 혈맥이었다. 인도로 들어가는 입구였으며, 반대 방향으로는 이란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여기서 동과 서가 만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길은 지구촌의 벽지를 찾아가는 험로 같지만, 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섰던 '문명의 대로'를 찾아가는 노정이다. tip1> 아프가니스탄은?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동서 교류의 요충지이다. 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국토 대부분이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이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북동쪽으로는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접해있다. 힌두쿠시 산맥이 국토를 남북으로 나뉘어놓고 4개의 주요 하천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거주해 국토를 크게 4개 지역으로 갈라 놓고 있다. 기후는 대륙성으로 기온차가 크다. 북부와 동부지역은 농경·유목을, 서부와 남부 지역은 사막이 많아 살기 힘들다. 고대부터 이민족의 침입을 자주 받아 민족 구성이 다양하다. 주요 민족은 파슈튼족·타지크족·우즈베크족·하자라족이다. 그 중 파슈튼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파슈튼족은 동·남쪽의 파키스탄 지역에도 널리 퍼져있어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뿌리의 민족으로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다양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교통이 나빠 개발이 안되고 있으며 북부의 천연가스만 생산하고 있다. 잇단 전쟁과 내전으로 주민들의 생활은 최악이며 현재는 대규모 양귀비 재배를 통한 아편 수출이 주된 수입원이다. (www.naver.com 참조) |
아버지의 산, 힌두쿠시 힌두쿠시(Hindu-kush)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힌두의 살해자'라는 뜻이다. 이슬람 시대에 노예로 끌려가던 수많은 힌두교도들이 이 산을 넘다 죽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낭만적인 해석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간 학자들은 이 이름이 원래 힌두쿠(HIndu-kuh), 곧 '힌두의 산'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프간인들은 이 산맥의 가운데 줄기를 쿠흐 이 바바(Kuh-i-Baba)라 부른다. '아버지의 산'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힌두쿠시는 장엄하고 늠름하며, 마치 아프간인들의 기둥과 같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7,500m에 달하는 힌두쿠시는 남쪽에서 여러 지맥으로 갈려 나가며 이 나라의 중앙부를 압도한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은 해발 고도가 1000~3000m에 이른다. 파미르 고원에 연결되는 동북부는 특히 산이 험해 5,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힌두쿠시에서 동남쪽으로 굽이져 내려오며 카불 강이 흐른다. 이 강 줄기를 따라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분지가 이어져 있다. 이 강은 하이버르 패스를 지나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분지로 내려가 인더스 강과 만난다. 카불 분지의 남쪽에 수도 카불이 있다. 힌두쿠시 너머 북쪽에는 비교적 탄탄한 저지대 평원이 펼쳐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평균 강수량이 50mm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건조한 기후지만,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기후도 온화하다. 북쪽 국경에 가까이 갈수록 넓게 전개되는 평원은 광활한 중앙아시아 스텝의 일부이다. 이곳에 쿤두즈, 마자르 이 샤리프, 발흐 같은 유서 깊은 도시가 이어져 있다. 서쪽 끝에는 이 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인 헤라트가 있다. 이 일대는 비옥하고 농산물이 풍성한 것으로 일찍부터 이름이 높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연결하는 서쪽 관문으로 이슬람 문화가 크게 번창했다. 아프간인들은 누구나 입을 모라 헤라트를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Tip1> 무자헤딘 1979년 결성된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이다. 아랍어로 '성스러운 이슬람 전사'란 뜻. 무자헤딘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산악지역을 근거지로 반 정부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1989년 소련이 철수할 때까지 10여 년간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에 대항했다. 결국 소련은 무자헤딘의 게릴라 전술에 휘말려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 아무 소득없이 물러나게 됐다. 이후 1992년 4월에는 친소 괴뢰정권인 나지불라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무자헤딘 내부의 반목과 대립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집권 4년만인 1996년 탈레반에 의해 정권이 무너진 뒤 북부동맹의 주축을 형성하며 다시 탈레반에 대항하는 무장 게릴라 활동을 펼쳤다. 이후 9.11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이 일어나 미국 등 연합군이 아프간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같은 해 11월 탈레반을 수도 카불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빈 라덴도 한때 무자헤딘의 일원으로 소련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멀고 험난한 길, 칸다하르(Kandahar) 서남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가장 건조한 지대여서 온통 메마른 사막과 준사막으로 덮여 있다. 이 사이를 흐르는 헬만드 강과 그 지류를 중심으로 주로 사람들이 거주한다. 그 동쪽에 이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칸다하르가 있다. 18세기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두라니 왕조의 본거지이자 탈레반의 거점이었던 곳이다. 페르시아의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어디로 가느냐?" "칸다하르로 간다" 그만큼 멀고 험난한 여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란 감독 마흐센 마흐말바프의 작품 중에 <칸다하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캐나다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인이 곤경에 처한 여동생의 편지를 받고, 이란에서 칸다하르까지 동생을 찾아가는 여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의 접경 지역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황량하게 메말라 먼지와 모래로 가득 찬 대지, 아프가니스탄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지금의 칸다하르는 1761년 아흐마드 샤 두라니가 두라니 왕조를 세우면서 건설했다. 그러나 '옛 칸다하르'는 지금의 칸다하르시에서 서쪽으로 4km쯤 떨어진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1000년부터 500년 사이 철기시대에 사람들이 처음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tip3> 탈레반 1994년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이다. 수니파 계열로 초기에는 남부 칸다하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1989년 2월이후 수많은 내전 끝에 정권을 잡은 무자헤딘을 물리치고 회교국가를 수립했다. 전 국토의 80% 이상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후에도 북쪽 지방에 근거지를 둔 반탈레반 연합세력과 내전을 지속했다. 그런 와중에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발을 사 아프가니스탄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현재까지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외국인 납치, 테러 등 항쟁을 계속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슬람교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여학교 폐쇄, TV 시청 금지, 가혹한 처벌 제도, 아동 학대 등을 자행, 국제사회 뿐아니라 자국민들로부터 원성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또한 2001년 3월엔 불교 유적과 불상을 파괴해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