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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학벌 사회
굿멘
2007. 11. 26. 08:40
10명 중 9명 “대한민국은 학벌 사회”
‘학벌과 출세’ 심층 서베이 상장사 임직원 441명 조사…“기업들 출신대학 지나치게 중시한다” |
■잘나가는 대학 중위권은 카이스트·서강대·포항공대·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 ■열 명 중 일곱 명꼴 “학벌 스트레스와 콤플렉스 느낀 적 있다” ■학벌은 우리 사회 결혼조건으로 성격·외모만큼 중요 ■“신규 채용 때 출신대보다 전공·성적·특별활동 고려해야” 79.1% ■“학벌 나빠도 임원 될 수 있어” 61.7% ■“학벌 너무 좋으면 하향취업 어려워” 78.5% ■“신정아 사건은 학벌주의 풍조의 부작용” 85.3% ■“지도층에 가짜 학위 소지자 많을 것” 72.3% ■학벌주의 타파 가장 잘할 것 같은 대선 후보는 권영길
좋은 학벌은 출세의 조건일까? 학벌이 좋으면 과연 선망하는 기업에 들어가고, CEO는 떼놓은 당상일까? 이코노미스트가 상장사 임직원·인사팀장 서베이, 조인스 인물정보 분석을 통해 학벌의 효과를 검증해 봤다. 학벌사회에서 학벌의 벽을 넘은 사람들의 DNA를 추출해 보고, 학벌 극복의 노하우도 제시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이 세 학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대학 브랜드로 조사됐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월 18~31일 상장기업 임직원 4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사회에서의 학벌’ 서베이 결과다. 응답자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대학 다섯 곳’을 적게 했더니 각각 97.7~99.5%가 이들 세 대학을 골랐다(서울대 99.5%, 연세대 99.1%, 고려대 97.7%). 영문으로 표기할 때의 머리글자를 따 속칭 스카이(SKY)라 불리는 이 세 대학의 응답률은 모두 4위를 한 카이스트(43.8%)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 밖에 응답자 10% 이상이 지목한 대학은 서강대(35.1%), 포항공대(32.0%), 성균관대(30.2%), 한양대(22.2%),이화여대(18.1%) 등이었다. 나머지 대학은 응답률이 5% 미만이었다(응답률 1% 이상인 대학은 한국외대 3.2%, 중앙대 2.7%, 부산대 1.8%, 경북대 1.6%, 경희대 1.4%). 응답률 1% 이상인 14개 대학 중 지방대는 카이스트·포항공대·부산대·경북대 등 네 곳이었다.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카이스트와 마찬가지로 재학생 전원이 장학생인 포항공대를 논외로 하면 지방대 중 부산대와 경북대 두 곳만이 끼었을 뿐이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은 대부분(72.8%)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17.0%는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매우 많거나 많은 편”이라고 털어놓았다(적은 편이다 55.8%, 없다 26.8%). 그러나 직장생활의 다른 스트레스에 비해 학벌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은 것 같다. 학벌(13.4%)은 7개의 직장 스트레스 요인 중 대인관계(65.5%), 상사(53.7%), 업무 적성(49.2%), 외국어(42.4%), 연봉(42.0%)보다 덜 심각하고, 유일하게 외모 스트레스(4.8%)보다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복수 응답). 잘나가는 대학은 역시 SKY
학벌 스트레스 경험률은 지방대 출신(86.9%,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은 72.1%)이 뚜렷이 높았다. SKY 중에서는 고려대(53.1%)와 서울대 출신(55.1%)이 학벌 스트레스 경험률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출신의 학벌 스트레스 경험률은 68.9%로 전체 응답자의 경험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잘나가는 대학 출신들도 이렇게 학벌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을 보면 학벌이란 역시 상대적 지위인 듯하다. 학벌(33.3%)은 또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중시하는 결혼 조건으로 성격(31.5%)이나 외모(31.5%)만큼 중요한 것으로 평가됐다(복수 응답). 학벌보다 중요한 조건은 경제력(89.1%), 직업(62.8%), 집안 배경(48.8%) 등이었다. 그런데 학벌은 응답자 본인이 중시하는 결혼 조건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간극은 상장사 임직원인 응답자들이 고학력에, 좋은 학벌의 소유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 중 27.9%가 이른바 SKY 출신이다. 본인이 중시하는 결혼 조건은 성격(86.4%), 경제력(61.2%), 직업(47.6%), 외모(42.2%), 집안 배경(35.1%), 학벌(14.3%) 순이었다(복수 응답). 스스로 중시하는 결혼 조건으로 학벌을 꼽은 사람은 50대 이상(21.1%)이, 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31.0%)·연세대 출신(20.0%), 그리고 외국 대학 출신(25.0%)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학벌사회인가? 학벌은 출신학교의 사회적 평판 내지는 등급을 가리킨다. 해당 학교의 브랜드 밸류, 어쩌면 브랜드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학벌은 성공의 조건일까?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올 하반기에 취업하지 못한 구직자 1369명을 대상으로 ‘지원한 기업에 불합격한 원인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29.2%가 출신학교 등 학벌을 꼽은 것이다. 토익 점수 등 영어 실력(27.2%)과 근소한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학벌은 이들에게 취업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벽이었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도 이런 현실을 수긍했다. 94.3%가 “본인의 능력·성적을 떠나 출신 대학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것. 또 응답자의 86.6%가 “우리나라 기업은 출신 대학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출신 대학의 영향은 그러나 일단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학벌의 후광 효과는 취업보다는 승진에, 승진보다는 급여(연봉)에 더 작게 작용하는 것 같다. “능력·실적을 떠나 출신 대학이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63.9%, “급여(연봉)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54.6%였다. 이렇듯 학벌이 승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학벌이 나빠도 기업의 임원이 될 수 있기 때문’(61.7%)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래도 실력이 학벌보다 중요하다”(62.6%). 그런 점에서 실력으로 평가 받는 능력본위 사회(meritocracy)의 기틀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실력이 학벌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은 외국 대학(75.0%)과 지방대 출신(69.6%)이, 또 전문대 출신(66.7%)이 상대적으로 높았다(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은 61.7%). 이런 인식은 또 50대 이상과 임원급이 많이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본인이 중시하는 결혼 조건으로 학벌(학력)을 고른 사람들은 실력이 학벌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벌영향은 취업·승진·연봉 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가 학벌 사회’라는 데 대부분(89.6%) 동의했다. 학벌 사회란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벌주의가 성행하는 사회다. 이를테면 “똑같은 성과를 냈다면 학벌 좋은 사람이 승급·승진에 유리한 사회”(82.5%)다. 단적으로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는 출신 대학이 너무 많은 것을 좌우한다”(72.1%)는 입장을 보였다. 자녀의 학벌이 가장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으로 인해 학벌 세습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어쩌면 학벌 사회에서 능력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학벌 사회라는 인식은 지방대 출신(93.5%,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 87.2%)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외국 대학 출신(100.0%)과 전문대 출신(100.0%)도 이런 인식을 많이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는 출신 대학이 너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지방대 출신(76.1%,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 69.9%), 외국 대학 출신(87.5%), 전문대 출신(100.0%)에게서 많이 보였다. 반면 학벌 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SKY 출신들은 이런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출신대가 너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응답률 : 서울대 출신 55.2%, 연세대 출신 51.1%, 고려대 출신 67.3%, 전체 72.1%). 학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82.7%), 학벌 콤플렉스를 많이 느끼는 사람들(87.8%)도 이런 인식을 많이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사건은 이런 학벌 사회의 이면구조를 드러냈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 역시 대부분(72.3%) “우리 사회 지도층 중엔 가짜 학위 소지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신정아씨의 사기 행각에 학벌주의 풍조가 토양이 됐다”(85.3%)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과대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경향”(88.2%)은 나아가 학벌주의의 사대성(事大性)이랄까, 학벌주의 사회의 취약한 정신적 토대를 시사하고 있다. “학벌이 너무 좋으면 하향 취업이 어려운 현실”(78.5%)도 따지고 보면 학벌 사회의 그늘이다. 학벌 사회가 학벌 인플레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사지원서에 출신 대학을 적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바람직하다 49.9%, 바람직하지 않다 50.1%). 사람의 가치와 능력을 학벌로 재단하려 드는 게 학벌주의의 폐단이라면 학력 내지는 학벌이 능력과 전문성을 판단하는 데 유용한 잣대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야흐로 대선 시즌이다. 그래서 응답자들에게 “대선 후보 중 학벌주의 타파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물었다. 1위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로 46.5%가 그를 지목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22.4%)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19.0%)는 각각 20% 안팎의 지목을 받았다(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3.6%, 이인제 민주당 후보 1.4%. 무소속인 이회창 후보는 이 조사가 끝난 후 출마 선언을 해 빠졌다). 3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의 폐지를 시사한 이명박 후보보다 이 정책의 유지를 공언한 정동영 후보의 지목율이 오히려 낮은 것은 후보에 대한 응답자들의 선호도가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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