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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은 왜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아니 그 전에 유명한 그림과 그림의 미학적 가치는 과연 일치하는 것일까? 어쩌면 많은 이들이 <만종> 앞에서 속으로 이런 질문들을 되뇌었을 것이다. 사실 ‘임산부 출입금지’라는 만평을 통해 조롱을 당할 정도로 <만종>이 파격적인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화화나 성화도 아니고 역사화도 아닌 이 그림은 이름없는 가난한 시골 사람을 그린 인물 설정에서부터 문제가 많았고, 바르비종이라고 하는 파리 남부의 시골에 살며 직접 야외에서 그린 작품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밀레가 <키질 하는 남자>를 시작으로 서서히 명성을 얻어가자 한 미국 사람이 <만종>을 구입했고, 이어 파리에서 백화점을 경영해 큰 돈을 번 프랑스인이 다시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신문기자들이 이 과정을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이 신문에 크게 보도하면서 <만종>이 유명해졌다. 밀레의 그림들은 판화로 제작되어 복제화가 범람했고, 반 고흐 역시 이런 복제화를 보며 밀레의 그림들을 복제하곤 했다. 천 프랑에 팔린 그림을 수백 배가 넘는 금액인 8만 프랑에 되사왔으니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감자를 캔 다음 늦은 오후 들려오는 종소리, 즉, 만종에 맞추어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밀레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밭일을 끝내고 늘 그렇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가난한 농부들의 삶을 찬양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림은 가난한 농부 부부를 통해 보잘것없는 수확에도 감사하는 경건함과 소박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배경의 드넓은 들판과 그 끝의 성당 그리고 들판을 물들이고 있는 석양이 마치 은은한 종소리처럼 느껴지는 묘사 등이 이 그림에서 눈여겨볼 부분들이다.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볼 수 있는 명작들 이외에도 이번 오르세 미술관전에서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과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볼 수 있다. 마네의 작품은 한 부대의 어린 마스코트를 그린 것인데, 에스파냐 풍의 거칠고 대담한 붓질(지금은 그렇게 볼 수 없지만, 당시로는)과 많은 화가들이 피했던 검은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이 생략된 점 등이 이 그림을 현대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간주하게 했다.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은 광인 화가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을 기다리던 유명한 노란 집의 실내를 그린 것이다. 침실 안의 모든 사물은 보잘것없는 투박한 집기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 고흐는 모든 물건들의 그림자를 제거했고, 과장되고 왜곡된 원근법을 통해 마치 살아 있는 사물들처럼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마치 의자도, 침대도 액자도 모두 마술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굵은 윤곽선은 사물들이 꿈틀대는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반 고흐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살아 있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 예민한 감수성은 그의 생명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보험료만도 8천억 원에 달하는 이번 전시회는 하나의 사건으로 봐도 무방하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꼭 보아야 할 전시회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또 한국에서 이 많은 원작들을 대하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19세기 후반 현대 미술이 태어나기 직전, 고전주의 미술이 전체적으로 회의되기 시작하는 과도기의 미술품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온 작품들을 잘 이해하면 고전주의 미술과 20세기 현대미술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