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위대한 사람은 새 길로 간다 !

굿멘 2007. 8. 2. 08:54
 위대한 사람은 새 길로 간다
고르디아스 매듭 단칼에 자른 알렉산드로스 … 끝내 세계를 지배
코페르니쿠스적 리더십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이란 말이 있다. 고르디아스는 소아시아의 왕국,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터키 중부 어디쯤 되는 곳이다.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한다는 손을 가졌던 그 유명한 미다스 왕의 아버지가 바로 고르디아스다.

아버지가 왕이 된 사연도 아들의 손만큼이나 극적이다. 당시 프리기아는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치지 않는 극도의 혼란 상태였다. 오랜 혼란을 수습하고자 제사장이 신탁을 구했더니 “모년 모월 모시에 이륜마차를 타고 광장에 들어서는 사람이 혼란을 극복하고 왕이 되리라”는 대답이 들렸다. 당시 이륜마차는 신분이 여간 고귀한 사람이 아니면 탈 수 없는 것이었다.

운명의 날,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난세에 백성을 구할 왕을 기다렸다. 그때 농부 고르디아스가 말이 끄는 짐 수레를 타고 터덜터덜 광장에 들어섰다. 위대한 영웅의 전차도, 훌륭한 현자의 가마도 아닌 초라한 짐수레였지만 분명 바퀴는 두 개였다.

고르디아스는 신탁대로 왕이 됐다. 그는 이런 횡재(?)를 기념해 자신의 수레를 신에게 바치고 신전 앞 산딸나무에 밧줄로 꽁꽁 동여맸다. 그리고는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장차 세계를 제패하리라 예언했다.

여기까지라면 고르디아스의 매듭이 그리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터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페르시아 원정에 나선 알렉산드로스가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을 지나는 길에 수레를 보게 됐다. 수백 년 시간이 지났건만 매듭이 어찌나 견고했던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잠시 살펴보던 알렉산드로스는 칼을 뽑아 단칼에 매듭을 두 동강 내버렸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부하들에게 알렉산드로스가 말했다. “너무 쉽군 그래.” 그리고 예언은 옳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세계의 지배자가 됐다.

1800년쯤 지나 콜럼버스가 달걀로 이를 흉내 내지만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우화다. 차근차근 매듭을 푸는 꼼꼼함과 성실성도 중요하지만 기존 관념의 틀을 무시하고 매듭을 한 칼에 잘라 버릴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있는 것이다.

전임자와 다른 사고 가져야 성공

지도자의 교체기가 특히 그런 시기다. 그중에서도 전임자가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긴 ‘빅 보스’형일수록 그 후임자는 전임자와는 다른 사고의 스펙트럼을 가질 필요가 있다.

흔히 위대한 리더의 뒤를 잇는 후임자들은 전임자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수가 많다. 자수성가한 창업자의 카리스마를 2세가 따라가기 어렵고, 스타 연예인의 2세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후광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후임자들이 전임자가 이룩해놓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아니면 전임자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같은 방향 그대로 달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전임자가 쌓아 놓은 찬란한 성과를 후임자가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탕진하다 결국 다 털어먹고 마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으니 하는 얘기다.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대표적인 경우다. 루이 15세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증손자다. 증조할아버지가 서거했을 때 어린 루이는 다섯 살의 귀여운 꼬마였다. 궁정에서는 이 꼬마 왕이 훌륭한 통치자로 성장해 루이 14세가 닦아놓은 유럽의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어린 후계자 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친애왕’이라 불릴 정도로 궁정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루이 15세는 열여섯 나이로 친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통치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이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지긋지긋한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걸 가장 기뻐했다. 정사(政事)는 플뢰리 추기경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정사(情事)에 탐닉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거대한 매음굴로 변했다. 플뢰리가 곁에 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무역 확대를 통해 통화를 안정시키고 재정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태양왕 이후 기울었던 국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치마폭에 휩싸인 왕은 애첩인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말을 듣고 숙적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고 영국과 싸웠다. ‘7년 전쟁’이다. 하지만 대패해 신대륙과 인도에 있던 광대한 영토를 잃어야 했다. 프랑스는 심기일전해 로렌 지방과 코르시카 섬을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이 컸던 재상 슈아죌은 왕의 새 애인 뒤바리 부인과 사이가 좋지 못해 정계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런 사이 사치와 향락에 파묻힌 프랑스는 혁명의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

후자의 경우, 즉 전임자가 닦아놓은 길을 그저 답습하려는 후임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역사 속에서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전임자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까지 기록하기에는 역사책이 너무 얇다. 대신 그것에 대한 경계의 말들은 많다. 온갖 경우에 참견해 위대한 명언을 수없이 남긴 17세기 초 스페인의 소설가 벨타사르 그라시안이 밥상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위대한 사람의 뒤를 따르는 걸 특히 경계하라. 뒤따르는 사람은 모방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짐을 벗기 어렵다. 새로운 길을 찾아 탁월해지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다. 가장 새로운 길은 힘이 들지 몰라도 위대함으로 가는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바로 그런 고행 길을 택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도 그런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필리핀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한 맥아더 장군에게 부관이 전임 사령관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놓은 선례집을 건넸다. 모두 효과적이었다고 판단됐던 방법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맥아더는 부관에게 “그 책이 몇 부나 되느냐”고 물었다. 부관이 “여섯 부”라고 대답하자 맥아더가 말했다. “그럼 여섯 부를 모두 태워버리게. 나는 선례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판단해 결정을 내려줄 테니 걱정 말게.”

맥아더 장군도 고행의 길 선택

인상파 화가들 역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 성공한 경우다. 아카데미즘에 빠져 있던 이전 대가들 눈으로 보면 그들의 작품은 형체도 없이 캔버스에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 최고의 평론가로부터 “이들의 그림은 벽지로도 쓸 수 없다”고 혹평을 받아야 했으며 방패 대신 인상파 그림을 들고 수비하는 터키 병사들 앞에서 적군들이 놀라 달아나는 신문 만평이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과거의 것들과 분명 달랐던 인상파 그림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미술 사조가 됐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는 첫발부터 없던 길을 가고자 했던 인물이다. 이미 닦인 길을 가는 것은 영웅의 짓이 아니었다.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전임자를 딛고 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기초를 닦은 아버지 필리포스 2세를 미워했다. 아버지와 정반대의 인물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필리포스의 그리스 정복 사업을 못마땅해 했다. “아버지가 다 정복해버리면 내가 정복할 땅은 어디란 말인가.”

부케팔루스의 일화는 그러한 알렉산드로스의 야심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날 말을 파는 한 상인이 궁전을 찾았다. 부케팔루스라는 이름의 그 말은 너무 사나워 어떠한 용사도 올라탈 수 없었다. 필리포스 왕은 쓸모도 없는 말을 가져왔다고 상인을 나무랐다. 그때 알렉산드로스가 “쯧쯧, 말이 아깝군” 하며 혀를 찼다. 불쾌한 표정으로 필리포스가 말했다. “그럼 너는 이 말을 탈 수 있단 말이냐.”

알렉산드로스는 단숨에 말에 뛰어 올랐다. 부케팔루스는 잠시 반항하다 이내 순해져 알렉산드로스를 태우고 힘차게 달렸다. 이 광경을 본 신하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필리포스가 무안해졌음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필리포스가 신하에게 독살되고 혼란을 수습한 알렉산드로스가 드디어 왕좌에 올랐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평정한 뒤 페르시아로 눈을 돌렸다. 페르시아 역시 종착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출발지에 불과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땅을 밟았다. 바로 부왕이 타지 못했던 말, 부케팔루스 위에 앉아서였다.

전임자의 행로를 따르길 거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길인 만큼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꼭 전임자를 뛰어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이다. 열심히 매듭을 풀며 그럭저럭 현상을 유지하는 것과 매듭을 자르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 대업을 이루는 것의 갈림길에 선 자의 선택 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논설위원 (ciebleu@joongang.co.kr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울때 비로소 채울 수 있다 !  (0) 2007.08.07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라 !  (0) 2007.08.03
부정적인 사람과 멀리하라 !  (0) 2007.08.02
FUN 경영 - 웃음  (0) 2007.08.02
노하우가 없어도 겁낼 필요없다  (0) 2007.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