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세브란스] - 11월 둘째주 개봉영화 |
이번 주에는 한국영화 개봉작은 0개인 반면 무려 11개의 외국 영화들이 개봉합니다.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경계]가 프랑스와 한국 합작 영화이기는 한데 서울 3개 상영관에서 개봉하는 소규모 예술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주는 개봉영화를 많이 못 봤습니다. 이번 주 개봉영화들의 시사회가 열렸던 1,2주 전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대만출신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리안 감독의 [색, 계]가 가장 화제입니다. 색, 계(色, 戒)(청소년 관람불가) [색, 계]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9월 열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부터 였습니다. [결혼피로연]과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두차례 받은데 이어, 재작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베니스 황금사자상 등 남들은 평생에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상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영화제가 출품영화들에 객관적인 점수를 매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이 시대 세계적인 명 감독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 합니다. 우리나라 극장가에서는 몇 년전부터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는 평가는 좋지만 흥행에 그다지 도움이 못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카데미 후보에만 올라도 오스카 트로피를 포스터에 떡 하니 박아넣고 홍보에 이용했는데, 요즘은 영화제 수상했다는 수상 내역은 곧 머리아프고 지루한 예술영화라는 선입견을 심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예 예술영화로 분류해 소규모로 개봉하지 않는 이상 영화제 수상 경력은 내세워받자 별 도움이 안되는데 이번 영화는 전문가들 평도 괜찮고, 관객들 입소문도 잘 나고 있어 배급사측이 당초 100개 정도 스크린을 잡을 예정이었다가 스크린 수를 무려 270개로 늘려 잡았답니다. [색, 계]는 리안 감독 최고의 걸작으로 꼽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특별한 사건이나 스펙터클 없이 두 시간 반이 넘는 긴 시간이 언제 흘렀나 싶게 끌어가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1939년대에서 43년까지 4년 정도 왕치아즈(탕웨이)라는 젊은 여성이 항일운동에 합류하고 조직의 명령에 따라 친일파의 거두인 첩보대장 이 장군(양조위)을 암살하기 위해 잘나가는 사업가 부인 행세를 하며 접근하는데 그만 두 남녀가 자신을 둘러싼 ‘계’를 넘어 마음 속의 욕망인 ‘색’을 추구하면서 흔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이 취하는 방식이 항일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는데 감독은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만 차용합니다. 따라서 항일운동 하는 등장인물들이 그리 완벽하고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항일운동가를 잡아 족치고 일본에 넘기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 장군이 때때로 멋있게 보이고, 일본군에, 친일파에 가족을 희생당한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항일운동 진영 측은 오히려 비조직적이고 어설픈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시대상황을 단순하게 배경으로만 깔면서 영화는 한 여자와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그 운명 앞에서 고통받는 심리와 선택하는 고민, 휩쓸려가는 처연한 모습에 집중합니다.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양조위의 연기는 이제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무색할 경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친일파로 권력실세에 오르고 또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아무도 믿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 매력적이지만 평온하게 가질 수 없는 젊은 여인의 노래 가락에, 또 그녀가 떠나간 텅빈 침대 모서리에 앉아 보일듯 말듯 눈가가 촉촉해지며 미세하게 떨리는 표정은 '인간이 흉내내는 몸짓과 말'이라는 연기라는 단어의 정의를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여주인공을 맡은 탕웨이도 영화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연기는 곧 연출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꼼꼼한 거장 감독의 세공이 뛰어난 자질을 가진 원석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다듬어낸 것 같습니다. (얼핏보면 우리나라 배우 려원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머리를 풀어내린 대학생때는 청순한 모습으로, 머리를 틀어올리고 화장을 한 막부인 모습에서는 요염함이 넘치는 다양성을 갖추고 감정의 진폭도 잘 표현합니다.)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하시는 정사 장면, 쇼킹할 정도로 직접적인 노출은 없지만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위가 높습니다. 정사장면 30분 분량이 삭제된 영화를 봐야하는 중국 관객들이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화면의 90%가 살색으로 뒤덮이며 방중술 책자에서나 볼 수 있는 기묘한 체위도 등장합니다. 인터뷰에서 가끔 극중에서 필요성과 개연성이 있다면 노출 연기도 불사하겠다며 기염을 토하면서도 정작 이미지 실추에 따른 광고 출연이 줄어들까하는 우려 때문에 기도 안차게, 감질도 안나게 안 보여주는 우리나라 여배우들이 생각나던데, 이 영화의 정사장면 유려하고 매끄럽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정사장면 촬영을 위해 배우들은 특별(?)한 트레이닝을 사전에 받았고 촬영할 때 촬영과 조명 등 핵심 스탭만 들어오게 한 뒤, 11일 동안 집중해서 찍었다고 합니다.) 세브란스(청소년 관람불가) 제목이 병원이름과 같네요. 코미디와 엽기 호러에 슬래셔 무비를 뒤섞어 독특한 매력을 내는 칵테일 같은 영화입니다. 무기회사 동유럽팀이 포상휴가로 사장님과 함께하는 호화별장 파티를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혀 버스는 돌아가고 이들은 호화별장 대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버려진 저택을 찾아듭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저택에서 다양한 장치로 공포를 유발하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에게 차례 차례 희생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피로 범벅이 됩니다. (곰 잡는 트랩-이 칼럼을 쓰는 공간이 이상하게 ㅊ 받침 들어가는 단어가 깨지는 특성이 있어 부득이하게 영어로 썼습니다.-에 다리가 걸려 벌어지는 소동 장면은 정말 끔찍합니다.) 고지식한 팀장부터 샌님같은 흑인, 떠벌이 약쟁이 등 개성있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살아있으며 황당하지만 꽤 웃긴 코미디도 배치되어 있는 독특한 영국영화로 [새벽의 황당한 저주]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포 영화류를 싫어하는 저도 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데드걸(청소년 관람불가) 공교롭게 본 영화들이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네요. 세브란스와는 사뭇 다른 차원과 정서의 영화입니다. 집나와 LA에서 창녀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중심에 놓고 시체를 발견한 여자는 괴팍한 성격의 몸져 누운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여자이고, 이 시체를 검시하는 검시관 여성은 십여년전 실종된 언니가 죽은 것으로 판명나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여성이고, 정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남편 때문에 고독과 고통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은 남편이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지는 등 각각 다양한 형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화학적 충돌을 일으키며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는 형식의 영화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토니 콜레트는 호주영화 [뮤리엘의 웨딩]에서 뮤리엘 역으로 이름을 알렸던 배우이고?트니 머피가 세 살짜리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맛이 간 마약 중독 미혼모이자 매춘부로 나옵니다. 제가 좋아했던 젊은 시절 맥 라이언과 닮은 것 같네요. ) 이밖에 톰 크루즈, 메릴 스트립 주연의 [로스트 라이언즈]와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몽골 사막을 배경으로 탈북자 모자와 유목민이 등장하는 [경계], 제랄드 버틀러와 피어스 프로스넌이 나오는 [더 버터플라이] 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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