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타임머신을 타다 | |
문화방송이 창사 46주년을 기념하여 내보내고 있는 특별기획 드라마 <이산>을 열심히 보아왔다. 열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참혹하게 죽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권력의 비정함을 깨닫는 이산. 노론벽파의 갖은 모함과 암살 음모를 견뎌내고 이씨왕조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정조로 성장해가는 이산. 어릴 적 동무이자 도화서 다모인 송연과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에 빠지는 이산. 이 드라마는 이병훈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출연자들의 도드라진 연기 덕분에 같은 시간대의 지상파 경쟁작보다 시청률이 많이 앞선다고 한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를 전공하는 분들 중 다수가 그러하겠지만, 나는 이병훈 감독이 특히 영상 역사극에서 세운 공로는 기념비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1999년 11월29일부터 2000년 6월27일까지 방영된 <허준>, 2001년 10월15일부터 2002년 4월2일까지의 <상도>, 2003년 9월15일부터 2004년 3월30일까지의 <대장금>이 바로 이 감독의 대표작들이다. 흔히 ‘한류’하면 일본에서 우상이 된 연기자 배용준씨를 떠올리지만, 나는 아시아와 서양 일부 지역에까지 한국 드라마의 깊이와 넓이를 가장 잘 보여준 예술인은 단연 이병훈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대장금은 중국과 홍콩,대만에서 인기가 높았음은 물론이고 이슬람국가인 이란에서도 시청률이 70%인가를 넘었다 하니 그야말로 문화사적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이른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다는 구실로 거리에서 중고등학생들한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하던 2000년대 초에 드라마 <상도>는 참다운 경제 살리기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었다. 재벌 일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분식회계와 불법상속을 서슴지 않는 오늘의 사회에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 같은 경제인 겸 목민관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이산>은 개혁과 진보를 외치다 자만과 나태에 빠져 민심의 철퇴를 맞은 우리사회의 ‘민주평화 세력’에게 ‘현재의 거울’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세력의 일원으로 수십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산>을 열심히 보면서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산>은 매회 긴박한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전개 때문에 재미가 있을 뿐 아니라 20대 초의 애송이 청년 세손이 노회한 왕후를 중심으로 한 노론벽파에 맞서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장차 맡을 권력체제에 대비하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새해 들어 <이산>이 좀 얄궂은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산과 송연의 사랑으로 드라마의 초점이 옮겨지면서 이야기에 억지가 섞이고 구성에 무리가 끼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산이 사랑에 빠져서는 안되고 오직 개혁만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빈궁을 정실로 둔 세손이지만 어릴 적의 애틋한 추억과 아리따운 외모를 함께 간직한 송연과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병훈 감독과 김이영 작가는 왜 그렇게 억지스런 구성으로 흘렀을까? 나중에 정조의 후궁이 되는 의빈 성씨가 이산의 어릴 적 동무라는 것이 허구임은 굳이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드라마뿐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이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허구를 창조하는 것은 고전적 기법이자 현대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산>의 감독과 작가는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로 시청률을 훌쩍 높이려고 마음을 다잡은 것인가? 우선, 이산의 어머니인 혜빈(나중의 혜경궁 홍씨)이 이산과 송연의 ‘부적절한 관계’를 뿌리뽑으려고 송연을 동지사절단에 넣어 중국으로 ‘추방’하는 설정이 무리하다. 나는 어제(1월14일 월요일) 밤 10시부터 <이산>을 보다가 세손의 ‘경호원’인 박대수가 송연의 안부를 알려고 중국 연경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오고, 시체가 되다시피 한 송연이 집 앞까지 와서 쓰러지는 장면을 마주하고서는 이것이 과연 이병훈 감독의 연출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연과 더불어 이산의 소꿉동무인 대수는 어느 날 이산의 명을 받고 중국으로 떠나는데, 걸어서 갔는지 말을 타고 갔는지, 아니면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갔는지, 어쨌든 연경에 나타난다. 그는 송연이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예부사의 책임자가 갑작스런 정변 때문에 투옥되었고, 송연도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산에게 돌아와 사실을 알린다. 곧 이어 송연은 ‘산 송장’이 된 채 집 동네 앞 눈 내리는 길에 기절한 채 쓰러진다. 지금은 서울에서 베이징(당시 연경)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명나라나 청나라에 동지사를 보내던 시대에는 걸어서 한 달도 넘게 걸리던 길이었다. 동지사를 따라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만주를 지나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비적을 만나거나 홍수로 길이 막히는 등 그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박대수는 해리 포터처럼 빗자루를 타고 날아갔다 돌아왔는가? 그리고 인사불성인 송연이 그 먼 길을 혼자서 걸어왔단 말인가? 애초에 무리하게 송연을 ‘유배’ 보내고 나서 이산과 재회시키기를 서두르다 보니 이런 억지가 생겨난 것이다. 이산이 궁궐 안에서 송연의 손을 잡고 있다가 빈궁의 눈에 띠거나 저자거리에 나가서 어릴 적처럼 천진하게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고 해서 타임머신에 태워 시공을 넘나들게 하는 드라마 전개는 참으로 이병훈 감독답지 않다. 이 감독은 지난해 9월13일 <이산>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왕조시대의 가치관을 떠나 보다 현대적이고 보다 인간적이며 보다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을 가진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그런 군주를 찾아 휴먼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제작의도이다. 그러나 ‘인간 이산’의 진면목을 보이겠다면서, 실제로는 궁중나인으로서 정조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된 성씨를 ‘사사로이 마음에 담은’ 정인으로 지어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문화방송은 <이산>의 인기가 날로 오르자 애초 계획보다 수십회를 연장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병훈 감독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다. 먼저, 송연과의 사랑은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정조가 된 이산의 인간됨과 개혁정치를 더 감동적으로 보여달라고. 기록을 보면 정조는 참으로 인간적인 임금이었다. 사형수가 된 백성의 심문절차를 10번이나 확인하여 억울함이 없게 하려고 애를 쓰는가 하면 형방승지를 의금부와 형조에 보내 기준을 어긴 형구(고문기구)의 실태를 조사해 고치게 하고, 내수사 도망노비들을 추쇄하는 관직을 혁파했다. 민주사회라고 외치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사형제도를 고집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정조의 이런 면모를 어떻게 볼 것인가? 1791년에 신해통공으로 시전 상인들(특권 기득권층)의 금난전권을 없애고, 과거제도의 폐단을 척결하며, 규장각 각신들이 날마다 중요 정사를 기록하게 하여 <일성록>을 만들어 임금 자신이 날마다 반성의 자료로 삼은 사실을 옛적 일로만 여길 것인가? 이 감독이 <이산> 후반부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담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병훈 감독에게 제안을 한 가지 하겠다. <이산>을 마치고 나면 혹시 <다산>을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겠는가? 이산보다 열 살 아래인 정약용은 정조가 총애한 신하였다. 다산은 이익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학문에 심취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기보다는 인간적인 목민관으로 일하기를 사랑했다. 게다가 그는 정조의 특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나가기도 했고, 천주교와 관련하여 고난을 겪기도 한 소설적 인물이기도 하다. 따뜻한 개혁군주 정조와 겸허한 천재이자 백성의 벗이었던 다산을 아울러 보여주는 드라마가 이병훈 감독의 손에서 나온다면 참으로 반갑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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