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책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읽으라

굿멘 2008. 2. 2. 08:43

책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읽으라


이원석
책에 대한 우상 숭배를 회개하며 세상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대하는 복음주의자. 지금은 문화와 종교 및 신학과 영성의 관계를 모색하다 그만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책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읽으라

우리 모두 책을 잘 읽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독서가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못해 왔다. 여기, 한 명의 독서가가 천기누설의 죄를 범하기로 했다. 이에 여섯 번에 걸쳐서, 독서가는 책을 어떻게 읽는지 들어 보기로 하자.

사랑이 길을 이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루터와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다. 파스칼이 말하는 바와 같이, 마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그러한 존재에서 그러한 행위가 나온다는, 기독교 윤리학의 심오한 통찰은 사실 신앙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 삶 전반에 해당되는 것이다. 바른 마음, 바른 사랑이 바른 방식, 바른 행위 이전에 전제되어야 한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잘 읽고 싶다면, 책을 진실로 사랑하면 된다. 즉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하느냐가 독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1)

책을 읽는 기술보다 책에 대한 사랑을

사랑이 길을 보여 준다. 책을 사랑하면, 책이 당신에게 자신을 열어 준다. 책이 당신에게 보여 주는-자신에게 이르는-길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길이다. 책과 당신, 둘 사이에 놓인 길을 일컬어 가다머는 ‘지평 융합’이라고 부른다(해석 작업은 정녕 인격적인 행위다).

독서를 위한 비법이나 표준 기술 같은 것이 있을까. 물론 그런 것은 없다. 모티머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정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독서의 기술」은 탁월한 독서론 교재이지만(「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멘토)으로 보라), 컴퓨터의 매뉴얼과 같이 기계적으로 답습해야 하는 지침은 아니다.

실로 다양한 독서가들이 있고, 다양한 독서법들이 존재한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지호)에 나오는-실존하는-그 엄청난 독서가 가족들을 보면, 그들 각각의 독서 양태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그들 모두 책을 사랑한다. 또한 엄청나게 많이 읽어치운다.

나와 주변의 독서가들만으로 국한지어 살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거의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만 보는 자유로운 영혼도 있고, 사재기에 열중하여 이 땅의 중력에 묶여 사는 이도 있다(내 이야기다2)). 책에 절대로 밑줄을 긋지 않는, 책 페티시즘 환자(?)도 있고, 반드시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복자 유형도 있다(나는 중간이다).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마니아들도 있고, 인문학 전반을 다 건드리고 다니는 잡식성도 있다(나는 심각한 잡식성이다).

그러므로 한두 명의 독서가에 대한 관찰이나 독서가와 관련된 통속적 견해에 의해 형성된 편견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는 편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존재)이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 그러므로 선결 과제는 이것이다. 책을 사랑하라.

어떻게 책을 사랑할 것인가?

그러나 이 말은 모호하다. 대체 어떻게 책을 사랑하라는 말인가? 사실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사랑하라는 조언이 필요 없다. 반면 책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는 이에게는 타고난 시각 장애인에게 색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라고? 책에게 키스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책을 껴안고 자라는 것인가?

길은 있다. 실은 표면상으로는 언뜻 여러분이 독서가에 대해 생각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자는 해석학적 순환을 따라야 한다. 책의 의미(미시적 차원)를 알기 위해 저자의 마음(거시적 차원)으로 나아가지만, 다시 저자의 마음을 알기 위해 책의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집으로 와 창밖을 보는 것과 집 안에 계속 앉아서 창밖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회전은 반복된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금 행위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행위는 중요하다. 기도를 알려면 기도를 해 봐야 하듯이 책을 알려면(즉 사랑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독서에서도 존재와 행위 사이의 무한 순환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선순환이건, 악순환이건). 앎과 행함이 조금씩 서로 영향을 주며 앞으로 나가게 되는, 제자도의 내적 역학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 무한 순환 과정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백번 대시하는 것과 같이,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서가들은 어떻게 책을 읽는가?

누군가가 독서가임을 알게 되는 것도 그들의 독서 행위를 통한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의 증명이 행위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갈파했다. 사랑의 증명도 행위로 증명되어야 한다. 결국 독서가들은 행위로 그들의 책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책을 읽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공유하는 어떤 것이 있다. 무술의 초보자가 고수의 방식을 모방하듯 그것을 찾아내고 따라해 보자.

대체 나는 누구인가?

먼저 나라는 인간을 간단하게 밝혀 둘 필요가 있겠다. 첫째, 나는 책을 읽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책이 날 안 받아주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내가 책을 사랑한다기보다 책이 나를 거둬 주는 실정이다. 책은 나에게 세계를 열어 주었고,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 책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났고, 책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됐다. 부끄러운 대사 적어서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둘째, 독서가로서의 나의 노선은 정신과학(인문학)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책과의 인격적 관계(나와 너)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기능적, 실용적 독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이 방식은 책을 친구가 아니라 도구로 취급하는 ‘나와 그것’의 관계에 서 있다. 물론 이것도 정당한 존재 의의가 있는 독서 방법이나, 나의 한계 밖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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