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의 숨결] 한석봉 |
내 일찍이 고금의 서법(書法)을 구하여 좌우에 펼쳐 놓았으나 그 때는 왕희지와 조맹부 가운데 누가 나뛰어난지 모른채 몇년 동안 조맹부의 글씨만을 베껴 썼다. 뒤늦게 왕희지의 난정서와 동방삭전 두 서첩을 얻게 되었을 때는 만시지탄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전에 익힌 서체는 다 버렸다. 두 서첩을 놓고 오늘 한 글자를 쓰고 내일 열 글자 배우며 달마다 연습하니 해마다 성과가 나타났다. 이제 저절로 왕희지 글씨에 마음이 가 저절로 손이 놀려진다. 몇 글자만 써도 별처럼 펼쳐진 글귀가 찬란하다. 비록 왕희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조맹부보다 못하지는 않으니 어찌 다행스럽지 않은가.
-석봉 한호(1543~1605)의 ‘석봉필론’(石峯筆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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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 에디슨이 말했다고 했던가. “천재는 99퍼센트의 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한석봉의 신필(神筆)도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글씨에 대해 몰랐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조맹부 글씨를 체본으로 삼아 베껴 썼다. 그러나 뒤늦게 접한 왕희지의 글씨에 매료됐다. 그는 왕희지의 서첩을 쓰고 또 썼다. “오늘 한 글자를 쓰고 내일 열 글자 배우며 달마다 연습하니 해마다 성과가 나타났다(今日書一字 明日學十字 月習歲得)”는 그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연습벌레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석봉의 글씨 수련을 얘기할 때면 ‘한석봉 어머니의 떡썰기’ 이야기를 들곤한다. 이번 설날 ‘한석봉 어머니 떡썰기·글쓰기 대회’를 여는 곳도 있다. 떡썰기 고사가 실제 사실이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석봉필론’은 그 일화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