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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습니다. 3월에 이렇게 눈이 푸짐하게 내리다니…… 우리 고향에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졌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눈이 많이 왔다는데 괜찮으시냐고……. 그랬더니 대뜸 서울 걱정입니다.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야단을 치십니다. 눈이 쏟아지는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그치면 고향 언덕길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입니다. 울컥 무엇인가를 토해내는 듯한 아지랑이. 아지랑이는 아무래도 봄의 멀미 같습니다. 그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면 먼 기억 속에서 어머니가 걸어 나오십니다. 황톳길 속으로 멀어져 가던 젊은 날의 어머니. 광주리를 이고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는 밭이나 논으로 일하러 가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떠나면 어머니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봄이 되면 왜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지 모릅니다. 이제는 그 이름마저 희미해진 `보릿고개"라는 고개에서 어머니는 먹을 것을 날라오고, 사랑을 길어다 부어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봄을 삼켜 우리에게 다시 뱉어 주셨습니다. 봄이 오고 봄이 가고, 다시 봄이 오고…. 그러다 자식들이 하나 둘 객지로 떠나갔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당신 홀로 봄을 맞게 되었습니다. 꽃보다 예뻤던 자식들은 부를수록 멀어져 갔습니다.
눈은 쏟아져 내리지만 아지랑이는 피어오릅니다. 봄눈은 어쩌면 아지랑이로 환생하려 내리는지도 모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젊은 날의 어머니가 오십니다. 광주리에 먹을 것을 담아 이고 황톳길을 걸어 나오십니다. 그 황톳길을 따라가면 고향입니다. 고향에는 늙은 어머니가 홀로 계십니다.
〈김택근/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