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10大 물결
이코노미스트·한국미래학회·유엔미래포럼 공동 |
#장면 1 지난 5월 13일 LG필립스LCD는 세계 최초로 A4 용지 크기(14.1인치) 컬러 전자종이(E-paper)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금속 기판에 박막트랜지스터(TFT)를 배열해 구부려도 바로 펴지는 이 종이는 두께가 300㎛ 미만으로 가볍고, 인쇄물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뚜렷한 화면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이 전자종이의 출현으로 책이나 잡지 대신 액정화면을 접어 들고 다니는 ‘전자종이’ 시대가 도래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전망한다. #장면 2 최근 일본과 이탈리아에서는 색다른 논쟁이 화두가 됐다. 이른바 ‘섹스 로봇 논쟁’이다. “섹스용 로봇을 만들어 매춘부를 대신하게 하자”는 주장에 거센 반대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론이 생소하다. “섹스 로봇을 활용해 매춘의 사회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모든 인간이 섹스중독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쟁에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은 아예 국가적인 차원에서 ‘로봇윤리헌장’을 제정해 올해 말 발표할 계획이다. ‘헌장’에는 인간의 로봇에 대한 학대는 물론 인간에 대한 로봇의 학대도 금지된다. 세계 첫 번째로 제정될 이번 ‘헌장’은 미국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가 1942년 제시한 ‘로봇 3원칙’을 따를 예정이다. 아시모프 박사의 3원칙은 ‘사람에 대한 공격 금지’‘명령복종’ ‘로봇의 권리 인정’을 말한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바꿀 ‘꿈같은 삶’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했다. 처음에는 생소하지만 곧 새로운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삶에 익숙해질 테고 잠시 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것이 18세기 산업혁명기부터 시작된 인간과 과학기술의 연결고리다. 아주 가까운 사례가 휴대전화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휴대전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휴대전화 기술을 연구하는 몇몇 사람만 삶의 변화를 예견하고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하지만 보라. 이제 휴대전화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렇지 못하다. 휴대전화로 통화는 물론 사진을 찍고 게임을 즐기고 음악을 듣고 외국어 공부를 한다. 게다가 휴대전화 기술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TV를 보고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본. 멀리서 집 안의 가전제품을 조작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도 있다. 향후 신용카드나 개인정보, 심지어 의료정보까지 내장할 움직임이다. “수년 뒤 휴대전화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제하는 만능기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만 보자. ▶인간의 오감을 감지하는 컴퓨터가 등장한다. ▶실시간 번역 시스템으로 외국어 공부가 필요 없어진다. ▶버추얼 애인이 보편화한다.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동물 사육이 실용화한다. ▶질병 진단용 나노 로봇과 나노 캡슐이 등장한다. ▶자연적인 것보다 더 좋은 인공 팔다리가 나온다. 이 같은 상상이 현실로 나타날 시기는 언제쯤일까? 가늠하기 어렵다고? 아니다. 이 전망은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이 100여 명의 전문가와 함께 예측한 2020년의 상황이다. 지금부터 계산하면 불과 10여 년이 남았을 뿐이다. 전문가들이 그리는 과학기술의 미래는 이처럼 숨가쁘다. 지금의 80세 노인이라 해도 생전에 이 같은 ‘꿈같은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미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샌드위치 경제론’이 화두다. 일본의 고부가가치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인데,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의 추격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10년 뒤 한국은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격경쟁에만 목을 맨다면 국내 인건비가 중국 수준까지 떨어져야 경쟁력을 갖게 된다. 10여 년 뒤. 초소형 나노 로봇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대에 실질임금이 지금보다 낮은 열악한 환경을 맞아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하지만 근거가 전혀 없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투자처를 잃은 돈은 생산과 연구개발(R&D)이 아닌 부동산과 증시로 흘러들어가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성장잠재력마저 줄어들 수 있어 우려된다”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중산층 붕괴로 빈곤층이 늘고 있다는 증거도 적잖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래가 불안할 테고 언제 돈과 사람이 해외로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대선 정국에서 두 명의 유력 주자가 내세우는 성장률 공약에 의심을 품는 전문가가 많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 모두가 내세우는 연간 경제성장률은 7%. 전문가들은 현재 성장률을 4%대로 잡고 있으며 따라서 목표치는 5%가 적당하다고 본다. 두 후보의 ‘2%’는 허수라는 것이다. ‘숨은 2%’ 찾기 많은 사람이 문제점을 안다. 기업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 하고 환율 하락으로 수출채산성과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으며 노동이나 자본 등 요소 투입형 발전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답은 뻔하다. 과학기술에 집중해 미래를 열어야 한다. 돈과 인력과 노력과 시간이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돼야 지금의 한국경제는 ‘샌드위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는 국내 기업의 문제점도 과학기술이 해결책을 줄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로 7%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창경 한양대 공학부 교수 겸 한국산업기술재단 초빙 교수는 다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허수 2%’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장률 5%는 타당합니다. 하지만 7%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나머지 2%는 결코 ‘허수’가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과학기술을 살리면 달성할 수 있는 수치지요. 이런 점에서 ‘허수 2%’는 ‘숨은 2%’라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어떻게 이 ‘숨은 2%’를 찾아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김 교수 주장의 강점은 이 ‘숨어 있는 2%’를 과학기술과 접목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나노기술로 숨어 있는 2%의 성장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노 기술을 둘로 나눈다. ‘점진적(evolutionary)’ 그리고 ‘혁명적(revolutionary)’ 기술이다. 그는 “각각의 나노 기술이 성장률을 1%씩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점진적 기술로 성장률 1% 올리기 전략을 보자. “핵심 부품과 소재 개발시 나노기술을 접목하면 성능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그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정보통신과 관련된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10%만 개선돼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1%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혁명적’ 나노 기술은 새롭게 팽창하는 신산업에 적용된다. “인터넷 이후의 최대 성장동력인 환경·에너지, 생명·의학, 차세대 자동차 산업에 나노기술을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와해성 기술’이라 부른다. 기존 생산체제를 무너뜨리는 기술이다. “제약 부문에서 나노기술을 활용하면 원자구조를 쉽게 이해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특허 만료된 제품을 카피할 수 있다”고 예를 든 그는 “이 기술은 기존의 제약 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으로 진단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는 이 같은 와해성 기술 기업 100개면 성장률이 1%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도 이를 잘 안다. 2004년 ‘10대 차세대 육성전략’을 만들어 첨단기술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은 산자부가 주관하고 있으며, 차세대 이동통신이나 디지털 콘텐트 분야는 정보통신부가, 바이오 분야는 과학기술부가 주관하고 있다. 자금도 천문학적이다. 1차 기간인 2006년까지 1조1300억원이 투입됐으며 2차 기간인 내년에는 이 액수가 두 배로 뛴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의 지원으로 상당한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한다. 와이브로나 지상파 DMB 송수신기 분야 등에서 모두 85개 시제품을 만들어 조기산업화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10대 분야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3년 11.5%에서 2006년 15.2%로 올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평가로 꼽았다. 송병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은 자금이나 인력 면에서 민간기업이 개별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상당 기간 정부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이 차세대 미래산업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워낙 자금이 많이 필요한 탓이다. 아무리 규모가 큰 대기업이라도 자칫 회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미래산업의 특징 중 하나다. 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장은 “자금 외에도 기업으로서는 어려운 점이 많다”며 “기술개발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기업은 사업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와 산업의 운명을 짊어진 미래산업은 정부와 대기업 몫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한 김종호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정책은 말 그대로 국가 차원의 사업”이라며 “정부를 중심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대학과 언론까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가 도약하느냐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고 봅니다. 과학기술이 그 키를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은 어떤 하나의 주체가 힘을 쓴다고 발전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요. 그야말로 전체가 합심해야 합니다. 국가적 단합이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이지요.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언론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도약과 퇴보’ ‘갈림길’ ‘발전의 키’ 등 김종호 교수의 말에는 현 한국경제에서 미래산업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대로 담겨 있다. 미래산업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현대 과학기술의 동향과 트렌드에 대한 이해다. ‘과학기술을 보면 미래산업이 보인다’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미래산업 10대 물결’이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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