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경영 눈높이도 끌어 올린다
이우희, 유상옥, 스튜어트 솔로몬 사장의 그림 사랑 이야기 그림 읽어주는 CEO |
그림과 배추의 공통점은? 경매장에서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 가격이 결정난다는 것이다. 가락시장의 한 경매사는 “‘좋은 배추는 높은 값을, 나쁜 배추는 낮은 값을 받는’ 원칙이 깨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배추 경매장엔 배추를 키우고 사고파는 사람들, 곧 좋은 배추를 가늠할 수 있는 사람들만 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은 배추는 누구 손에 들어가게 될까? 좋은 배추의 값을 제대로 칠 줄 아는 장사꾼, 그리고 운 좋은 사람, 곧 경매의 룰을 아는 사람이다. 예술 경매장을 찾는 사람들도 그렇다. 세간에선 예술작품의 ‘묻지마 투자’가 성행한다고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예술품 경매시장에 그림의 ‘그’자도 모르는 뜨내기들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경매시장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보통 경매라는 게 제시 가격보다 높은 값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술을 볼 줄 아는 사람끼리 통용되는 취향의 수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배추와 달리 예술을 보는 기준은 모두 다를 터인데 작품의 좋고 나쁨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1호 경매사인 서울옥션 박혜경 이사는 이 궁금증을 다음 대답으로 일축했다. “저의 스승은 컬렉터들입니다. 저보다 수십 년 앞서 예술을 접해 온 그분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자꾸 보다 보면 무엇이 좋은지 알게 되죠. 고수가 집어내는 작품은 그 가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 그분들의 취향과 선택입니다.” 결국 예술을 이해하려면 돈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다. 최근 CEO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으로 회화를 비롯한 사진·조각 등 순수예술이 부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순수예술은 속성으로 후다닥 깨칠 만한 것은 아니다. 와인도 자꾸 마셔 본 사람이 제 맛을 알듯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20년은 예술 감상을 취미로 삼아 온 CEO들은 어떻게 예술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우희 삼성에스원 사장,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대표,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사장에게 그들의 예술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보는 법도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예술 감상이라는 취미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공부가 되더라”는 것이다. 감성경영, 디자인 경영공부에 ‘예술감상’만 한 취미가 없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삼성 사장단이 미술관 가는 까닭? “그냥 예쁜 소녀를 그린 그림이지요.” 이우희(61) 삼성에스원 사장은 그의 집무실에 걸린 임직순 화백의 작품을 기대했던 것보다 싱겁게 설명했다. 왜 저 그림을 걸어 놓았느냐고 묻자 “질리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제가 예술을 제대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그림, 나쁜 그림이 어디 따로 있나요? 자신이 좋으면 그만이지요. 그림 보는 데 정답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설렁설렁 그림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작가별 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한다. “저는 그림에서 작가를 발견합니다. 작가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지요. 예를 들어 권옥연 화백의 녹색은 유난히 편안한 색감이지요. 이용덕 서울대 교수의 조각은 정말 독특하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조각은 양각을 하는데, 음각으로 양각 느낌을 표현했기 때문이죠. 그런 스타일이 나온다는 것은 내공이 깊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 피카소 박물관에 가서 초기 피카소 그림의 변천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아, 피카소가 처음부터 추상을 한 것이 아니구나.’ 어떻게 지금의 피카소 스타일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미술품을 통해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내공을 쌓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깨닫는다고 한다. 그는 예술 감상을 통해 감성을 충전해 왔다.
실제로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문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요즘엔 ‘복합화’가 대세입니다. 장르에 구분이 없죠. 예술도 그렇고 손해보험, 생명보험 구분이 없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특히 조각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평면적으로 경영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경영해야 회사가 잘 돌아가겠죠.” 7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인재사관학교 삼성을 진두지휘해 온 그는 ‘감성’과 ‘삼성의 인재관’의 연관성도 언급했다. “감성의 시대엔 여성의 비중이 더 커집니다. 이건희 회장께서 감성을 언급하셨을 무렵은 남성 직원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죠. 여직원을 아예 따로 뽑아 각 부처에 뿌려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직원보다는 남자 직원을 선호했으니까요. 지금은 여직원 비율이 크게 늘어 그 시절이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말입니다. 디자인 분야에선 감성이 더욱 중요하죠. 삼성디자인학교(SADI)를 세운 것이나 그 이전에 디자인멤버십이라고 해서 디자인 경영을 내세운 것도 삼성이 최초일 겁니다. 강남에 사무실을 임차해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할 수 있도록 야전침대까지 넣어줬습니다. 그때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삼성의 인재관도 그가 입사한 후 30년 동안 많이 변했다. 인재를 중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지금은 좀 더 ‘감성’을 강조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림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인재입니다. 예전엔 튀는 사람을 경계했다고 하면 지금은 개성 있는 사람을 중시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최근의 그림 열풍에 대한 그의 생각도 밝혔다. “투자 가치보다는 소장의 기쁨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약점이 유행을 쉽게 타는 것이라며 예술계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엔 고영욱 화백류의 극사실화가 유행인데, 자신의 취향을 발달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이건희 회장의 감성경영론을 언급했지만 그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건 벌써 오래전 일이다.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죠. 그때만 해도 그림쟁이는 굶어 죽는 줄 알고 아버지가 반대하셨고…. 제가 6남매의 장남이기도 해서 화가의 꿈은 접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중섭이니, 박수근이니 하는 지금의 대가들도 당시엔 배를 곯았습니다. 쌀 몇 됫박이면 그의 그림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유상옥(74) 코리아나화장품 대표는 늘 미인을 옆에 두고 산다. 그는 마리 로랑생(1883~1956년)이 세 여인을 그린 작품을 ‘미인도’라 소개했다. 로랑생은 프랑스 여류화가다. 소녀들을 몽환적으로 그린 그녀의 작품은 1900년 초반 당시에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에 비즈니스차 갔다가 화랑에 들렀어요. 로랑생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평소에도 어느 나라에 가든 박물관·화랑에는 꼭 들르죠. 출장 가면 한두 점은 사는 편입니다.” 그의 집무실에는 다양한 작품이 있었다. 피카소의 작품, 새끼손가락보다 자그마한 자기병 등 자랑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굳이 로랑생의 작품을 들고 온 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모아 온 미인도 컬렉션의 가장 최신작이기 때문이다. 로랑생의 작품이 얼마 전 옥션에서 꽤 비싼 값에 팔렸다며 뿌듯해 했다. “미인도를 보면서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아, 이런 미인처럼 여인들을 예쁘게 만들어줘야지’하고 말입니다.” 그는 여러 점의 미인도를 가지고 있다. 김홍도·신윤복의 작품도 한 점씩 가지고 있고 춘향도도 가지고 있다. “미인도를 걸어놓고 보면 서양과 우리의 차이점이 보입니다. 우리는 미인도였고 그들에겐 초상화라고 해야 더 맞을지 모르겠어요. 그림으로 기록해 왔던 게 서양문화니까요. 누드만 해도 그렇죠. 우리는 나혜석 화백이 최초로 누드를 그렸지만 서양에선 이미 누드를 예술로 보고 그리지 않았습니까?” 어떤 미인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한국의 미인에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어디 여인뿐이랴. 그는 자신의 얼굴도 곱게 단장한다. “아, 사진을 찍는다면 화장을 하는 게 예의지. 그래야 독자도 볼 만할 것이고.” 톡톡 분을 두드리는 본새가 하루이틀 된 것은 아니다. 그림 사랑은 더 오래됐다. 첫 그림을 구매한 게 벌써 40년 전 일이다.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가진 건 사실 의도적이었습니다. 경영학과 회계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감성을 키우려면 그림을 공부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죠. 처음엔 한국화가 좋더라고요. 인사동에 다니면서 그림 구경을 다녔습니다. 한 번 보면 잘 몰라서 100번은 갔나…. 그러니까 작가들의 스타일이 구분됐습니다. 이게 청전의 그림이구나, 노정의 그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당시 동아제약에 다니던 그는 상여금을 받으면 봉투째 들고 화랑에 가 그림을 샀다. 월급쟁이니까 비싼 그림을 못 샀다고 한다. 55세에 코리아나화장품을 세우기 이전에는 줄곧 봉급쟁이였으니 예술품 모으는 취미가 꼭 돈이 많아 한 것은 아닌 셈이다. 40년 예술에 투자한 결과는? “어떤 화장품 용기가 더 아름다운지 구별할 수 있는 심미안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후회도 있다. “그 옛날, 박수근 그림을 사야 했는데…. (웃음) 그때는 한국화에만 빠져있었는데, 그가 어렵게 산 소정의 그림보다 훨씬 쌌다”는 것이다.
스튜어트 솔로몬(59) 메트라이프생명 사장은 한국에 가장 오래 머무른 외국인 CEO다. 한국에 있는 것이 언제나 좋기만 할까. 그는 너무 오랫동안 미국의 가족과 못 만난 것 같아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의 도자기는 어쩌면 외로울 수도 있는 한국 생활의 보험 같은 존재다. 그에게 20년 이상 도자기를 애인 삼아 지내 온 얘기를 들어봤다. “도자기는 거짓말을 못해요. 참 순해요.” 그는 뽀얀 달항아리를 소중히 꺼내 놓았다. “이 작품은 이천 도자기 비엔날레에서 얼마 전에 구입한 겁니다. 참 잘생겼죠? 참 재미있는 건 행사 끝나기 며칠 전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원래 달항아리는 형태에 흠집이 없어야 높게 치는데, 달항아리는 땅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아 흠이 있게 마련이죠. 이게 진짜 골동품이었다면 정말 비쌌을 거예요.” ‘참 재미있는 건’이란 어구를 연방 말 머리에 붙여가며 도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참 재미있는 건 도자기와 보험이 닮았단 것이에요. 둘 다 제가 죽고 나서도 계속 가치가 이어지죠. 장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거짓말을 하면 제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 도자기가 좋다고 하는 것일까? “한국의 도자기는 참 좋아요. 한국 도자기는 단순하면서도 채워주는 맛이 있어요. 중국 것을 옛날에 몇 개 샀는데, 한국 도자기와 나란히 갖다 놓고 보면 중국 것은 싫증이 나더라고요. 한국 사람이 몰라서 그렇지 일본 사람들도 한국 도자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안타까운 건 한국 사람들이 도자기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제가 호림박물관에 가끔 가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없더라고요. 주말에 문월회 사람들이랑 가는데 꼭 소개하고 싶은 곳입니다.” 문월회는 그가 속한 도자기 동호회다. 1995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경매에 우연히 들렀는데 친절히 설명해 주는 한 경매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도자기 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돼 문월회의 원년멤버가 되었다고 한다. 옛 관요였던 경기도 광주에서부터 옛 고구려 지역까지 답사하는 등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문월회에는 의사도 있고 저처럼 장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참 재미있는 건 연말에 망년회를 하면 그날 하나씩 도자기를 가져와서 서로 경매에 부쳐요. 재미로요. 가끔 엉터리 물건도 나옵니다만(웃음) 밤을 새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죠.” 많이 샀느냐고 묻자 “제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그리고 집에다 도자기를 놓으려면 문제가 있어요. 일단 큰 공간이 필요한데 놀 데가 없고, 목기가 있어야 올려놓을 수 있는 데 마땅한 것이 없네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정말 놓을 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평양에서 가져온 오래된 장롱 위에 멋들어진 청자가 놓여 있었다. 슬쩍 장롱을 자랑하며 “이 안에 보험금이 잔뜩 들었다”는 농도 건넨다. “도자기를 자꾸 보면 볼수록 코가 높아져요.” 이제야 그가 외국인임이 실감이 났다. ‘눈이 높아진다’는 말을 실수한 것이다. 그의 말버릇처럼 ‘참 재미있는 건’ 외국인인 그가 한국 도자기의 매력과 닮았다는 점이다. |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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