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방자치 단체가 의무적으로 주민들에게 묘지를 분양, 시신 처리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이런 제도는 아무 곳에나 무덤을 쓰지 않고 생전의 숨결과 추억이 깃든 자신의 삶의 터전 가까이에 묘지를 만들어 죽은자와 살아있는 자가 공존하는 문화를 일궈냈다.
신분과 지위, 부와 상관없이 죽어서는 모두가 잘해야 1평 남짓 차지한 공간에 비석만 세워진다.
1831년 콜레라가 런던 등 전역을 휩쓴데다가, 산업혁명이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연간 수 만 명의 사망자를 교회 구내 묘지에 안장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영국은 교회의 지하실에 시신을 두는 비위생적인 장례관행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초기에는 교회 구내에 묻혀야 천국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설묘지를 반대하며 이것이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의회는 소액의 헌금을 교회에 내고 사설묘지에 묻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에 런던 외곽에 7개의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런던교외에 화장장이 들어서고 화장법이 공표됐다.
현재 영국의 화장률은 70%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체 화장을 권장하고 있다.
사설공동 묘지는 점점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돼면서 주민들이 법인 성격의 자선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어졌다. 그 당시 만들어진 묘지중 하나로 런던 중심가에 북쪽에 위치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가 있다. 양쪽 나지막한 언덕길 아늑한 작은 숲속에 공원같은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한국에는 혐오스럽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는 묘지가 약 2m 높이의 담장을 경계로 주택가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 초기인 1839년에 만들어진 4만 5천평 크기의 사설묘지로 런던으로 이주했던 독일 태생 사상가이자 혁명가 마르크스를 비롯 많은 명사들이 묻혀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묘지는 빅토리아 왕조 시대 특유의 건축및 조각양식에 바탕을 두며, 정문과 건물들을 기품 있게 만들었다. 엄숙한 느낌과 종교적인 분위기가 살아나도록 묘지를 설계 하여, 나무와 꽃들을 많이 심어서 평화로운 작은 숲속같이 만들었다. 묘지를 찾을때 비가 부슬 부슬 와서 그런지, 빗소리를 들으며 둘러보는 공동 묘지는 풀냄새 가득한 - 초록빛이 눈부신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가장 큰 특색은 아무래도 그의 묘지가 있다는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무덤은 정문 쪽으로 약 백 미터 떨어진 길 모퉁이에 동쪽을 바라보며 잠들어있다. 2m 높이의 화강암 틀에, 청동으로 만든 마르크스 두상이 설치되어있고 묘비상단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인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솔직히 소박하고 작은 듯한 다른 묘비의 분위기를 보면 참 큰 묘지이면서 안 어울리는 분위기라고 느껴지지만, 그의 두상으로써 많은 방문객들이 마르크스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 묘지에는 아내와, 가정부이자 정부였던 그녀와 딸등 6명이 묻혀있다고 한다.
자신의 철학이 적어도 1백년 이상 전세계의 절반 이상을 지배했던 사상가요 혁명가의 묘지답지않게 공동묘지 한구석에 너무나 평범하게 잠든 모습이 놀랍다.
이외에도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는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이 클 페러데이,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인 허버트 스펜서, 여류 소설가 메리 앤 및 중남이 트리니다드 토바코 출신 여성혁명가 클로디아 베라 존스등 많은 명사들이 잠들어 있다.
사설묘지는 공설묘지보다 임대료가 비싸서, 미리 묘지 터를 살수 없고 죽은 뒤 국적에 관계없이 장소를 골라 사용할수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장할 경우에는 묘지 임대료 2천파운드와 땅파는 비용 500 파운드등 모두 2500 파운드정도 들지만 화장하는 경우는 훨씬 적은 500파운드를 받는다. 그만큼 화장법을 장려하면서도, 국토 면적 비율 조성도 하는 듯하다.
영국 사람들은 공원처럼 휴식공간으로 묘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도심속에 이런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의 공동묘지 사고방식과 달리 이곳은 함께 공존하는 분위기이다. 산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동그란- 밥두껑 엎어놓은것 같은 형태와 비석이 다 똑같은 풍경이라 보면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곳은 취향에 따른 다양한 묘비들이 가지가지 세워져 묘비 구경하는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 공동묘지는 평지에 세워져있으며 수 많은 묘비들사이에 마냥 누워 샌드위치먹거나, 조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청솔모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서는 풍경들을 보면서 죽은자와 산자가 함께 공존한다는게 이런것이구나 하는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영국은 지방자치 단체가 의무적으로 주민들에게 묘지를 분양, 시신 처리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이런 제도는 아무 곳에나 무덤을 쓰지 않고 생전의 숨결과 추억이 깃든 자신의 삶의 터전 가까이에 묘지를 만들어 죽은자와 살아있는 자가 공존하는 문화를 일궈냈다.
신분과 지위, 부와 상관없이 죽어서는 모두가 잘해야 1평 남짓 차지한 공간에 비석만 세워진다.
1831년 콜레라가 런던 등 전역을 휩쓴데다가, 산업혁명이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연간 수 만 명의 사망자를 교회 구내 묘지에 안장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영국은 교회의 지하실에 시신을 두는 비위생적인 장례관행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초기에는 교회 구내에 묻혀야 천국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설묘지를 반대하며 이것이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의회는 소액의 헌금을 교회에 내고 사설묘지에 묻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에 런던 외곽에 7개의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런던교외에 화장장이 들어서고 화장법이 공표됐다.
현재 영국의 화장률은 70%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체 화장을 권장하고 있다.
사설공동 묘지는 점점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돼면서 주민들이 법인 성격의 자선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어졌다. 그 당시 만들어진 묘지중 하나로 런던 중심가에 북쪽에 위치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가 있다.
양쪽 나지막한 언덕길 아늑한 작은 숲속에 공원같은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한국에는 혐오스럽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는 묘지가 약 2m 높이의 담장을 경계로 주택가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 초기인 1839년에 만들어진 4만 5천평 크기의 사설묘지로 런던으로 이주했던 독일 태생 사상가이자 혁명가 마르크스를 비롯 많은 명사들이 묻혀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묘지는 빅토리아 왕조 시대 특유의 건축및 조각양식에 바탕을 두며, 정문과 건물들을 기품 있게 만들었다. 엄숙한 느낌과 종교적인 분위기가 살아나도록 묘지를 설계 하여, 나무와 꽃들을 많이 심어서 평화로운 작은 숲속같이 만들었다.
묘지를 찾을때 비가 부슬 부슬 와서 그런지, 빗소리를 들으며 둘러보는 공동 묘지는 풀냄새 가득한 - 초록빛이 눈부신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가장 큰 특색은 아무래도 그의 묘지가 있다는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무덤은 정문 쪽으로 약 백 미터 떨어진 길 모퉁이에 동쪽을 바라보며 잠들어있다. 2m 높이의 화강암 틀에, 청동으로 만든 마르크스 두상이 설치되어있고 묘비상단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인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솔직히 소박하고 작은 듯한 다른 묘비의 분위기를 보면 참 큰 묘지이면서 안 어울리는 분위기라고 느껴지지만, 그의 두상으로써 많은 방문객들이 마르크스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 묘지에는 아내와, 가정부이자 정부였던 그녀와 딸등 6명이 묻혀있다고 한다.
자신의 철학이 적어도 1백년 이상 전세계의 절반 이상을 지배했던 사상가요 혁명가의 묘지답지않게 공동묘지 한구석에 너무나 평범하게 잠든 모습이 놀랍다.
이외에도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는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이
클 페러데이,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 철학자이며 사회학자
인 허버트 스펜서, 여류 소설가 메리 앤 및 중남이 트리니다드 토바코 출신 여성혁명가 클로디아 베라 존스등 많은 명사들이 잠들어 있다.
사설묘지는 공설묘지보다 임대료가 비싸서, 미리 묘지 터를 살수 없고 죽은 뒤 국적에 관계없이 장소를 골라 사용할수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장할 경우에는 묘지 임대료 2천파운드와 땅파는 비용 500 파운드등 모두 2500 파운드정도 들지만 화장하는 경우는 훨씬 적은 500파운드를 받는다. 그만큼 화장법을 장려하면서도, 국토 면적 비율 조성도 하는 듯하다.
영국 사람들은 공원처럼 휴식공간으로 묘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도심속에 이런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의 공동묘지 사고방식과 달리 이곳은 함께 공존하는 분위기이다. 산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동그란- 밥두껑 엎어놓은것 같은 형태와 비석이 다 똑같은 풍경이라 보면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곳은 취향에 따른 다양한 묘비들이 가지가지 세워져 묘비 구경하는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 공동묘지는 평지에 세워져있으며 수 많은 묘비들사이에 마냥 누워 샌드위치먹거나, 조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청솔모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서는 풍경들을 보면서 죽은자와 산자가 함께 공존한다는게 이런것이구나 하는 평화로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