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우리 민족의 영산인 시원한 백두산을 가고 싶었다. 요즘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등 고구려 역사극의 위력과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배웠던 장군총, 광개토대왕비의 유적등도 보고 싶었다. 고구려 인들의 말발굽을 울리며 광활한 벌판을 용맹스런 기상으로 달리던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도 싶었으며 독립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만주 벌판도 체험하고 싶었다. 꿈이 간절하면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6월 23일 아내와 함께 노랑풍선 사무실을 찾아 친절하고 성실한 청년 "신동일"씨를 만나 여행비 완결과 함께 마음은 이미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 |
대련 국제공항을 향해 출발 2007년 7월 5일 목요일 (1일째) | |
대련 도시 개요
요동반도 최남단에 위치(북위 38~40도 사이)한 동남쪽으로 황해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북해가 있으며 면적은 12,573평방km, 인구 600만이 거주하는 도시로 4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살고있다. 뛰어난 자연 환경과 수려한 해안경치를 지닌 이곳은 여름은 덥지않고 겨울은 춥지않은 날씨로 중국의 유명한 피서지중 하나이다. 시가지는 빌딩숲을 이루고 초목이 무성하며 교통이 편리하여 ‘해상화원'이라 불리운다. 개혁개방 이후 나날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대련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현재 중국 북방의 가장 개방된 도시로 동북 3성과 내몽고 자치구의 대외개방 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련항은 세계 150 개국과 무역수송을 하고 있다. | |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해광장
우리의 첫 번째 관광인 성해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곳곳이 파헤쳐져 어수선한 분위기이며 도로 한가운데로 전차길이 들어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30분 걸려 성해광장에 도착하였다. 총면적은 약4만 5천평 이며 아시아에서 가장큰 광장으로 중앙에 세워진 높이 19.97m의 백옥탑은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시점에 기념하기 위해 완공된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20분간의 자유시간이 주워져 각자 살펴보기로 한다. 광장 내에는 수많은 조형물, 나무와 꽃등 정리 정돈이 잘된 아름다운 경관과 광장이 크다 보니 차가 다닐수 있도록 차도를 만들어 놓았고 특히 눈에띄는 1999년 대련시 창립 1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1세부터 100세까지의 발모양을 새겨넣은 이색 모습을 볼수있다. 이 100쌍의 발자국은 대련이 백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며 중심에 있는 조각품들은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중국의 기백을 의미한다. | |
발자국상 뒤쪽에 있는 반달형 조각 모형은 도시 발전을 뜻하며 그위에서 대련의 젊은이들이 미끄럼을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을 볼수있다. 그 아래로는 바다와 접한 공원이 있는데 옛날 큰별이 바닷속으로 떨어졌다는 전설로 인해 성해라 불리운다. 이 공원은 1909년에 건설 되었으며 계속 확장공사를 거쳐 관광, 수영, 오락시설을 겸비한 종합공원으로 대련 시민들의 문화활동과 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대기는 스모그 현상인지 아니면 황사로 인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화창한 날씨에도 시야가 뿌옇다. 성해광장은 규모가 대단하여 끝이 보이질 않는다. 중국은 땅덩이가 커서인지 무엇이든 크게 만드는 그들의 스케일을 읽을수 있다. 성해광장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12시 40분 비사성을 향해 출발한다. | |
천혜의 요새이자 군사적 요충지 비사성
버스에서 내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비사성 아래에서 일행 25명은 3대의 작은차로 갈아타고 10분간 강원도 대관령길을 연상케하는 대흑산을 향해 오른다. 우리의 왕기사 전쟁이라도 난듯 급하고 과격하게 운전을 한다. 고막이 터질듯한 요란한 엔진 소리로 인해 옆 사람과의 대화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목숨은 왕기사에게 달려있다. 잔뜩 긴장하여 턴을 할때마다 묶어논 짐짝처럼 이쪽 저쪽으로 몸이 쏠려 아줌마들의 아이쿠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생각하니 험난한 언덕길을 탄력이 떨어질까봐 처음부터 끝까지 밟고 올라간것 같다. 차에서 내리니 모두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사성, 중국에서는 대흑산에 있는 산성이라는 뜻에서 대흑산 산성이라 부른다. 해발 663.1m의 고구려때 축조된 성으로 고구려가 수, 당과 전쟁을 할때 적군의 침입을 막은 요새로 사면이 절벽으로 쌓여있고 서문으로만 오를수 있다. 산성에서 바라본 우리가 타고온 주차장에 있는 대형 버스가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이고 주변은 첩첩산중 신록이 우거진 곳으로 소슬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 |
오후 2시 10분, 단동으로 가는 길은 끝도없이 펼쳐지는 바람에 나부끼는 강냉이 밭(조선족 가이드가 말하는)의 연속 길이다. 문득 작년에 노랑풍선에서 보여준 중국영화 “붉은 수수밭”이 떠오른다. 한차례 휴게소를 거쳐 5시간만에 단동에 도착했다. 압록강이 바라 보이는 전망좋은 조선대반점 3층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하고 그곳서 15분 거리에 있는 홍원호텔에 7시 30분 여장을 풀었다. 폭죽 소리가 요란하여 창가를 내다보니 우리들을 환영하듯 불꽃 놀이가 한창이고 단동역과 그옆의 광장에서는 단동 시민들이 화려한 불빛을 배경삼아 음악에 맞춰 댄스에 열중하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함께 춤을춘다. 마치 댄스 경연장과 같은 분위기이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수 있으며 저녁후 하루를 마감하는 즐거운 운동인 셈이다. | |
단동 개요
7월 6일 금요일 (2일째) 요녕성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중국 최대의 국경 도시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다. 단동의 인구는 약 246만명이며 그중 시내 인구는 76만명으로 다민족 도시로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조선족등의 29개 민족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며 총 면적은 15,222평방km 이고 서쪽은 대련, 북쪽은 본계, 동북은 길림성과 접해 있으며 지리적으로 평양까지 220km 이고 서울까지 420km이다. 산수가 풍부하여 풍경이 수려한 도시로 중국과 북한의 교류 창구역할을 하고있다. | |
우리 민족의 그리움과 향수를 자극하는 압록강
6시 50분,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10분만에 압록강 선착장에 도착하여 우리는 곧장 압록강 유람선에 올랐다. 압록강은 백두산(장백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흐르는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민족의 강줄기로 총길이는 795km이다. 철교는 원래 2개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현제는 끊어진 다리로 남아있고 다른 한 개는 완전한 모습의 철교로 이른 아침이라 차가 다니는 모습은 찾을수 없다. 우리 일행중 6.25 참전 용사와 실향민들이 계시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힘을 볼 수 있어 가슴 짠한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 |
철교를 휘돌아 가면 안개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이북의 별장과 이북 주민들이 이른 아침 고기를 잡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곳을 지나 올라가니 붉은색으로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적힌 글씨가 안개속을 뚫고 선명하게 들어나 마치 이북땅에 온것같은 착각에 빠져 슬픈 우리의 현실을 가까이서 실감할수 있다. 30분간 압록강 주변을 둘러본후 아쉬움을 뒤로한체 버스에 올라 집안으로 향하는 길에는 압록강을 끼고 맞은편 이북의 민둥산이 삭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땔깜이 없어 산의 나무를 모두 잘라버린 것일까? | |
가는길에는 직접 농사를 지은 참외를 판매하고 있다. 가이드는 꿀참외라고 맛을 보고 가자고 한다. 배꼽참외 하나씩 집어들고 맛을보니 밍밍하다. 우리나라 금싸라기 참외가 훨씬 맛나다. 만주평야를 지날때도 강냉이 밭을 질리도록 보고간다. 모두들 내려 강냉이 밭을 화장실 삼아 볼일을 보고 버스로 들어오니 지독한 인분냄새가 가득하다. 신발 검사를 하자는 일행들의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향기롭지 않은 냄새로 인해 가는길이 힘들었지만 어쩌랴, 버스에서 뛰어 내릴순 없는 노릇, 이 괴로운 현실을 잘 극복해야지. | |
집안 개요
집안은 서기 3년 졸본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후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 할때까지 425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 역활을 해온 곳으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이다. 인구는 약 30만 정도 되는데 그중 조선족이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도시 전체가 무덤군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는 10,000개 이상의 무덤군이 있으며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해 있어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정비가 대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집안으로 향하는 산하는 온통 푸르다. 공기도 좋고 물도 맑다. 볼일을 보러 잠간 내리니 이름 모를 꽃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폐속 깊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5시간 걸려 집안에 입성하여 고석 가이드와 동승해 점심을 하러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조선족 주민이 인근 산에서 재배한 장뇌삼을 판매하고 있다. 그 앞에는 우리나라 다른 여행사에서 온 여행객들이 빙둘러 흥정을 하고있다. 곧장 북한식당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이미 1층에는 관광객들로 만원이고 무대에서는 북한 아가씨 악단들의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로 흥을 돋군다. 일행 아주머니들이 무대 연주를 보며 점심을 하자는 요구는 자리가 없는 이유로 곧장 2층으로 올라가 인절미떡, 도라지 나물, 열무김치, 고등어 구이 된장찌개등을 곁들인 토종 웰빙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하고 1시 30분 환도산성에 도착한다. | |
적으로 부터 두번이나 함락당한 비운의 환도산성
고구려 2대 유리왕 22년 졸본에서 집안으로,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으로 옮길때 도성은 평지의 성과 산성이 한조를 이루어 조성 되었는데 국내성은 평지의 성이고 산성은 환도산성이 되는 것이다. 이 환도산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현 국내성 서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환도산에 있으며 산성 옆으로는 풍요로운 퉁거우강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적으로부터 함락당한 슬픈 기억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인 곳이다. | |
환도산성으로 오르는 길 왼편에는 천연 해자(물도랑)인 풍요로운 통구하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벌거벗고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오른쪽에는 왕족들 돌무덤(적석총) 군락이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곧장 산성으로 올라간다. 살이 타는듯한 강한 햇빛으로 인해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니 돌로 쌓아올린 성벽터와, 성터에는 주춧돌 몇 개 그리고 저멀리 산중턱에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황무지나 다름없어 보이는 왕궁터가 삭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환도산성 장대(전망대)에는 돌을 쌓아놓고 옆으로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놔 위로올라 멀리까지 관찰할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에는 아낙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살구, 오이, 토마토등을 파는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변에는 철철 흐르는 물이 풍부한, 내가 보기에도 산성으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곳을 둘러 보는데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 |
빈 공터같은 국내성 북벽터
환도산성에서 버스로 10분 정도의 거리의 길가에 있는 국내성 북벽이 있는곳에 도착하여 살펴보기로 했으나 대부분의 일행들이 버스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어떤이는 볼것도 없는걸 뭘 내려서까지 보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아니 이 무슨 말씀인가? 우리는 지금 역사 관광에 나섰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까? 나를 포함한 몇 명만 부지런히 내려가 사진 몇컷찍고 올라온다. 성벽 뒤로는 아파트가 들어차 있어 성벽이라기 보다는 돌로 쌓아놓은 빈 공터같은 느낌의 유적지에 대한 관리소홀을 목격할수 있다 | |
고구려 20대 장수왕릉(장군총)
고구려의 대표적인 돌로된 무덤으로 고구려 20대왕인 장수왕의 무덤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으며 거의 완전한 상태의 모습을 하고있다. 올봄 지중해 여행시 보았던 이집트의 쿠푸왕 피라미드의 축소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경관은 푸르름이 넘쳐 났으며 앵두나무, 자두나무, 복숭아 나무등의 유실수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어 풍요로운 인상을 심어주었고 바닥은 잔디 대신 키작은 토끼풀을 심어 놓아 정리정돈이 잘된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군총의 높이는 13.1m 한변의 길이는 31.58m가 되는 계단식 사각형 무덤이며 내부를 볼수있게 옆으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올라가 보았다.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으며 돌무덤 위에 유리를 깔아놓고 그 위에는 각 나라의 지폐가 잔뜩 깔려있다. 외부에는 한면에 3개씩 거대한 돌을 세워 놓은, 모두 12개 였는데 지금은 11개만 남아있고 1개의 받침돌이 없어 훼손되어 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할수 있다. 이 돌은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받침돌의 용도이다. 장군총은 돌의 홈을 파서 그위에 돌을 올려 쌓은것이 특징이다. 그 옆으로는 애첩 무덤이 있는데 흔히 배총이라 말한다. 모두 5개가 있었는데 모두 훼손되고 지금은 하나만 남아있다. 언뜻 보기에는 고인돌 처럼 보이지만 맨위의 겉돌이 주저않은 모습이다. | |
동방 제일의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동방 제일의 비석이다. 높이 6.39m의 직사각형으로된 거대한 비석으로 이 비문의 내용은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 역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방탄 유리로 보호막을 만들어 놓았고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내부 비석 아래에는 각 나라의 여행객들이 놓고간 지폐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내부촬영을 금하고 있으며 밖에서만 촬영가능 하다. 책에서만 보아왔던 이곳을 직접보니 감계가 무량하였다. | |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릉
광개토대왕비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대왕릉은 언뜻보면 자그마한 언덕과 같다. 이곳도 계단을 만들어놔 위로 올라 내부를 볼수 있는데 여기에도 입구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무덤 자리에는 커다란 돌뿐이다. 그곳서 바라보면 집안시가 휜히 내려다 보인다. 왼편으로는 북녘땅 만포시로 공장의 큰 기둥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걸 볼 수 있어 지척에 있다는걸 실감할수 있다. 우리의 고석 가이드, 역사극 주몽이 뜬후 고구려 유적지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드라마에서 주몽역을 맡았던 송일국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이곳을 나오는 길에는 자두를 따는 인부의 모습을 볼수있다. 광주리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자두 2개를 집어들고 미소를 지으니 상대방도 미소로 답을한다. 시큼한 맛이 더운 여름 갈증 해소에는 최고이다. 오후 4시 20분, 버스를 타고 통화로 이동한다. 여기서부터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산림이 우거진 산속길을 달린다. 강냉이 밭을 지나는것 보다 키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시원하다. 오녀봉을 지나 화장실을 찾기위해 산속의 작은 오두막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직접 체취한 꿀과 화분을 팔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신선한 나무 향기가 머리속까지 맑게한다.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 마셨다. 일행들은 물건을 사느라 분주하다. 나도 화분 2개를 샀다. 꿀때문에 벌들이 날아다녀 쏘일까봐 얼른 버스에 올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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